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차 세계 대전/배경 (문단 편집) == 개요 == 이 문서는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단이 된 [[발칸 반도]]의 [[19세기]]사(에 더한 그 이전 역사)와 그에 대한 [[유럽]] 열강의 변화를 다룬다. > "작금의 유럽은 화약고이고, 지도자들은 무기고 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뿐이야. 작은 불씨 하나가 우리 모두를 집어삼킬 전쟁을 일으키겠지. 언제 그 폭발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서 일어날지는 말해줄 수 있어. [[사라예보 사건|'''발칸에서 벌어질 저주받을 바보짓''']]이 그 폭발을 일으킬 거야." - [[오토 폰 비스마르크]] 대전쟁은 19세기 초반부터 전 유럽에 퍼지던 [[민족주의]] 의식의 발로로 인한 [[범슬라브주의]]([[러시아 제국]]-[[세르비아 왕국(1882년~1918년)|세르비아 왕국]])와 [[범게르만주의]]([[독일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충돌이 도화선이 되었다. 기존 [[제국주의]] 국가([[대영제국]]-프랑스 공화국)와 신흥 제국주의 국가(독일-[[이탈리아 왕국]]) 간의 갈등은 또한 분쟁을 확대시킨 요소였다. '''여기에 좋은 시비거리가 되어준 게 발칸 반도다.''' [[19세기]] 초 [[발칸 반도]]의 국가들은 서로 다투듯이 독립을 선포하게 된다. 이 난립한 발칸 반도의 국가들은 민족, 종교가 달랐기에 서로 동질감이 약했고 [[오스만 제국]]이라는 과거의 [[슈퍼파워]]의 쇠퇴로 인한 힘의 진공상태에 놓여있게 되다 보니 서로 상대방의 영토를 침략해 자국의 세력확장을 꾀하려 하는 그야말로 [[전국시대]]급 [[난세]]가 펼쳐지게 된다. 이 지역은 오헝제국에게도 제국의 "유럽 앞마당"이자, 해외 식민지 건설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서쪽은 통일 국가인 독일과 이탈리아에, 동쪽은 러시아에 가로막힌 가운데 제국이 팽창 가능한 유일한 지역이었으며, 오스만 제국의 위협에 대처하는 완충지대로 전략적 의미가 매우 큰 곳이었다. 또 비록 지금은 600년 전통의 [[합스부르크 가문]]의 권위로 지배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수십 개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오헝제국의 특성상 민족주의의 발흥으로 언제 제국이 무너질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태에서 제국을 안정화시키고 국론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적극적으로 팽창정책을 추구해야 했다. 결국 오헝제국은 자잘한 신생 독립국들이 서로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슬그머니 이 지역에 숟가락을 걸치는 시도를 하게 된다. 여러 독립국의 발흥을 부추기면서, 특히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보스니아]]를 집어삼키고 [[알바니아]] 독립을 편들어준 게 좋은 예. 한편 [[러시아 제국]] 입장에서도 발칸 반도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제국의 경쟁자인 오헝제국의 배후지역이기도 하거니와, 슬라브족도 많이 살아서 만약 이 지역에 러시아 제국에 우호적인 국가가 성립된다면 오헝제국은 러시아 제국과 발칸 반도의 친러시아 국가 사이에 껴서 [[양면전쟁]]을 수행해야 하니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따라서 러시아 제국은 발칸 반도 꼬꼬마 국가들의 자존심을 "슬라브" 드립으로 간질간질 충동질해 자기들끼리 힘을 합쳐 친러 반오스트리아 세력이 형성되기를 시도하게 되며, 여기서 주된 역할을 맡은 국가가 같은 슬라브인 국가이자 팽창주의 전략을 가지고 있던 [[세르비아 왕국(1882년~1918년)|세르비아 왕국]]과 [[불가리아 왕국]]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